잡생각, 잡글/잡글2012/02/04 22:20


 





시인이 어때요, 라고 물으면,
그걸 왜 내게 물어요, 라고 답한다



이를테면 선수를 빼앗긴 셈이었다. 멈칫하는 사이 그가 먼저 물어왔다.

그의 물음은, 사실은 내가 그에게 물으려던 것이었다. 다만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고, 말하지 않아도 들릴 것 같아서 꺼내지 않았을 뿐.

그의 물음은 이상하게도 울음처럼 들려서, 묻는 건지 우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인지 엉뚱한 대답을, “그걸 왜 내게 묻느냐”는 어정쩡한 반문을 던지고 말았다.

시인이 어때요, 라고 묻는데, 그걸 왜 내게 물어요, 라고 답하다니. 엉터리 시인의 엉터리 친구.

살인과도 같은 해고를 멈추라며 35미터 크레인 위에 스스로를 가두고 309일을 목 놓아 외친 끝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살아 내려왔던 11월의 어느날, 송경동이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기에 ‘여섯번째 송경동’이라는 이름이 떴다.

지난 몇 년, 내 전화번호가 한 번 바뀌는 사이, 그의 전화번호는 여섯 번이나 바뀌었다. 그럴 수밖에. 그는 현상수배범이었으니까.

크레인에 매달린 김진숙을 지키기 위해 지상의 싸움을 선동한 죄, 절망의 시대에 감히 희망을 떠벌린 죄, 고상하게 시 나부랭이나 끼적댈 일이지 함부로 성명서를 써댄 죄가 결코 작지 않았다. 그의 죄목은 단박에 작성된 것이 아니다. 대추리에서 그가 벌인 극렬행동을 떠올리자. 콜트기타 해고노동자를 뭐라 선동했던가. 용산참사 철거민에게 내민 연대의 감언이설은 어떻고.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를 쓸어버리려던 포클레인을 막아서고 그마저 점거해버린 간악한 용역집행방해죄는 사장님을 얼마나 슬프게 했던가. 반성은커녕 희망버스를 주동하고, 국가기간산업육성에 불철주야 매진하시는 한진중공업 회장님을 모욕했다. 자본님의 준엄한 해고칼춤에 가래침을 뱉었다.

12월, 철창에 갇히기 전에도 그는 갇혀 지냈다. 김진숙이 35미터 공중에 떠 있을 때, 그 또한 35미터가 넘는 서울의 어떤 건물에 갇혀 생활했다. 출두하기 전날 밤, 거기서 그를 만났다. 뜻밖에도 돈에 파묻혀 있었다.

‘희망버스 주유비’라 적힌 모금함에서 쏟아진 백원짜리, 천원짜리, 만원짜리를 침 발라가며 세고 있었다. 돈 때 묻은 시인, 퉁퉁 부은 그의 더러운 발목이 눈을 붙잡았다. 포클레인에서 떨어져 바스라졌던 발목이었다. 이튿날 그는 철창에 갇혔다.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청구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전화하지 않는다. 나도 만나러 가지 않는다. 어때요, 라고 물어오면, 그걸 왜 내게 물어요, 라고 답할 자신이 없다.

시인은 말을 읽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시인은 지나간 말로, 다가올 말을 보여준다. 보이는 말, 그것이 시다. 송경동은 자신이 내뱉은 어제와 오늘의 말로, 감옥에 갇힐 내일의 말을 보여주었고, 그 말을 가두는 국가를, 쇠창살이 되어버린 우리들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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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11/30 22:08



 




그때, 찍새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홍대 앞 ‘상상마당’ 5층 남자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다가 로버트 카파를 만났다. 그는 소변기 위에 이렇게 써 놓았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이 마치 고속도로 안성휴게소 남자소변기에 붙은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처럼 들렸기에, 나는 변기에 ‘충분히 다가가서’ 오줌을 누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눈물도, 오줌도 흘리지 않았다.

로버트 카파는 살아있을 때부터 이미 전설이었다. TV가 대중화되기 전의 시대, 사진화보가 최첨단의 미디어로 각광받던 시대의 신화를 써내려갔다. 그는 전쟁영웅이었다. 전장에서 총의 방아쇠를 당김으로써가 아니라, 사진기의 방아쇠를 누름으로써 영웅이 되었다. 19세기에도 크림전쟁을 기록한 로저 펜턴, 미국 남북전쟁을 담은 매튜 브래디 등 전쟁사진가가 있었지만, 그것은 ‘죽은 전쟁사진’이었다. 20세기의 카파가 세상에 내놓은 건 ‘살아있는 전쟁사진’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전쟁의 긴장감이 사진 안에서 꿈틀댔다.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스페인 내전을 담은 카파의 기록은 ‘세계사진사’와 ‘세계전쟁사’에서 빠지지 않고 삽입되는 이미지가 되었다. 전쟁을 산파라 부른다면, 카파는 산모였으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포토저널리즘’이었다. 아빠는? 사진기의 경량화를 이룬 당대의 사진기술이었다.

카파는 참화와 함께 전쟁의 드라마도 선물했다. 그의 결정적 순간들이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들과 만나 전설적인 사진집단 ‘매그넘’ 결성으로 이어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쟁에 온몸을 던지는 불굴의 의지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 게다가 이민자가 풍기는 신비감까지, 카파는 남성영웅의 자질을 골고루 갖췄다. 담배를 피워 문 그의 모습은, 제임스 딘과는 다른 차원의 남성미를 풍긴다. 살아서 영웅이었던 그가 1954년 전쟁터에서 죽었을 때, 그것이 어떤 전설로 증폭했을지는 상상그대로다.

카파는 그 자신의 남성미로, 남성성이 격돌하는 전쟁의 참화를, 남성의 기계인 사진기에 담았다. 사진기의 작동방식이 총의 그것에 비유되고, 그것들이 다시 남성의 그것에 비유되는 것은 여간 적절한 관찰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다가감, 그냥 다가감도 아니고 ‘충분히 다가감’이란 무엇일까.
문제의 문구는 카파가 남긴 말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대목인데, 가장 남용된다는 점에서도 논쟁적이다. 다행스러운 건 카파의 진의가 무엇이었든, 이 말에 해석의 여지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사진은, 거리에 대한 감각과 사유를 필요로 한다. 물러섬과 다가감, 그것을 물리적 거리에 국한하지는 말자. 나에게 타자는, 심리적 거리감을 재고 따질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카파의 2차대전 종군을 다룬 책 <Slightly Out Of Focus>가 한국에서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 바뀌어 출간되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생각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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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11/16 19:33







안보가, 안 보인다




구럼비는 이미 상처 입었다. 돌이킬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어느새 멀리 왔기에,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막막하기에.

구럼비로 가는 모든 길목은 가로막혔다. 낮게는 3미터, 높게는 6미터 장벽이 구럼비를 꽁꽁 감싸고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지켜주지도 않을 거면서, 밤낮으로 네 앞을 서성이는 민중의 지팡이들, 공격의 방패들. 어릴 적 구럼비에서 놀고, 늙어 구럼비에서 절을 올리던 할망 할아방들은 이제 ‘침입자’라 불리며 저지당한다. 이것이 애국이요, 이른바 안보다. 국가가 추진하는 평화군사기지, 혹은 군사평화기지를 방해하는 자는, 좌파요, 김정일 추종세력이다.

저 우람한 장벽은, 평화를 끔찍하게 사랑하는(한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이, 평화를 가로막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두기 위해 세운, 괴물을 닮았다. 거기에 사람의 안보는, 안 보인다. 삶의 안보는, 안 보인다. 장벽은 시선을 가린다. 보았던 기억을, 보려는 의지를 차갑게 차단한다.

“구럼비는, 보지 않고 떠올리기 힘든 검푸른 바닷가여서 말로는 어려워. 그래도 상상하려면, 머리를 쪼개렴. 꾸불꾸불 꿈틀대는 뇌에 거무스름한 물감을 입혀. 그것을 수만 배 확대하고, 단단하게 굳힌 뒤, 바닷가에 앉히는 거야. 구럼비는 딱 그렇게 생겼지.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너럭바위의 물결, 파도가 부서지는 검은 뇌!”

조용히 앉으면 붉은발 말똥게가 생각을 실어 나른다. 용천수와 짠물이 섞인 바다연못에서 아이들이 물장구친다. 목마른 꼬마가 고사리손에 할망물을 받아 마시고, 은어는 이름처럼 햇살을 부수며 강정천을 거슬러 오른다. 멀리 범섬이 말없이 바라본다.

실재했던 것들이, 이제 기억으로만 남았다. 그마저 희미해지려는데, 사진이 기억을 붙든다. 기억을 가둔다. 이럴 때 사진은 존재했던 것의 증명이자, 더할 수 없는 부재증명이 된다.

주민 없는 주민설명회를 열어놓고, 공무원들은 해군기지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불렀다. 핑크빛 주민소득 증대를 제시하고, 관광미항이 보장해 줄 국가안보를 약속했다. 그들 누구도 이 해군기지가 미군시스템에 기반할 거란 사실을, 그것이 곧 미국의 미사일방어(MD)시스템을 의미한다는 속내를, 평화는커녕 긴장유발의 뇌관이 될 거란 우려를, 1조원에 달하는 파괴적 건설이 삼성을 배부르게 할 거라는 기만을 말해주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간질로, 오래된 마을공동체가 갈가리 찢겨 형제자매마저 등 돌린 비극을 사죄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 장벽엔 누군가 이렇게 써 놓았다. “이곳은 민군복합형 범죄자양성소, 통곡의 벽!”

관광미항이라는 달콤하고 가련한 수사가, 범죄자양성소라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는다. 벌써 몇 명의 주민과 평화활동가가 체포 투옥되었는가. 얼마나 많은 상식적 법절차가 유린되고 있는가. 강정마을에서, 안보는 안 보인다. 당신들의 장벽이 모든 걸 가려버렸다.




<씨네21>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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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10/05 22:22


 






찍사를 위한 끔찍한 서비스 정신



 

“아, 죄송합니다, 한 번만 다시 할게요, OO일보 기자님께서 방금 오셔서....”

사무실은 달아올라 후끈했다. 이따금 만세 소리도 터져 나왔다. 달뜬 얼굴로 서로를 끌어안는가하면, 손을 꽉 맞잡고 “우리가 해냈어!”를 외치기도 했다. 그 순간은, 이른바 386세대의 대표주자로 꼽히던 이의 국회입성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80년대의 뜨거웠던 청년운동이 ‘투표에 의해’ 제도로 승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직 그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숨죽이며 개표방송을 지켜봤을 그는 ‘당선확정’의 소식과 더불어 선거캠프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사진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한 남자가 뛰어 들어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후보님, 아니 의원님께서 오십니다!”

환한 웃음과 함께 그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꽃다발이 건네지고, 동시에 플래시가 파바박! 연달아 터졌다. 그의 이름이 구호가 되는가싶더니, 지지자들의 손에 들린 몸이 공중으로 몇 번을 오르내렸다. 순조로웠다. 이제 그의 소감을 들을 차례가 되었다. 그때였다.

사진기를 맨 남자가 들어와 보좌진과 뭔가 쑥덕거리더니, 다시 하자는 거였다. 그는 가장 힘이 센 사내는 아니었지만, 가장 힘이 세다는 OO일보의 기자님이었다. OO일보에 기사가 실리는 건, 새내기 의원님에게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심지어 그 신문의 사장님은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슈퍼맨이 아닌가. 게다가 오늘은 잔칫날인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거 두 번 한다고 탈날 일도 아니었다. 모두는 약 20분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채 꽃을 뺏었다 도로 주고, 다시금 헹가래를 쳤다. 혹시나 더 좋은 장면이 나올까 싶어 기자들은 다시 셔터를 눌러댔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11년이 흘렀어도 또렷한 그날의 기억은, 기자라는 존재가 그때 그곳의 일을 기록하는 데 멈추지 않고, 가끔은 연출가로 변신한다는 사실을, 정치에 민감한 이들일수록 그 연출에 협조적이라는 걸 가르쳐준 알찬 시간이었다. 자고로 정치란, 이미지로 승부하는 거야.

하지만, 그걸 안다 해도, 그걸 인정한다 해도, 정치가 이미지를 등한시 할 수는 없다고 해도, 우리는 참 멀리 왔다. 이미지가 정치를, 심지어 법을 조롱하는 시간 위에 우리는 서 있다.

곽 교육감의 유무죄 여부가 법정에 있지 않고, 기자님들의 카메라에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검사님들은, 새벽 2시 조사를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는 곽노현을 되돌려 기자들 앞에 세웠다. 아차차, 죄인의 이미지가 필요해! 차를 돌려랏! 그 이미지가 필요했던 건 검찰일까, 기자일까. 그들은 왜 기소장으로 말하지 않고, 인증샷으로 말하려는 걸까.

“정치논리로 법논리를 짓밟지 말라”며 노무현 앞에서 핏대를 세우던 젊은 검사들이 그립다. 그들은 어떻게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이미지 스타일리스트가 된 것일까.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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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10/05 22:17


 






해변의 애매모호그라피





빛은 이중적이다.
그것이 파동인지, 입자인지를 두고 오랜 설전이 벌어졌다. 빛은 파동성을 지녔지만, 파동의 규정을 어겼다. 아울러 입자성을 지녔으나, 입자의 규칙 또한 어겨버렸다. 흥미로운 건 빛이 파동인 동시에 입자가 아니라, 이럴 때는 파동이고, 저럴 때는 입자라는 점이다. 이 말은 모순적이다. 우주의 모순은, 빛의 모순에 집약되어 있다.

빛은 접촉이다.
파동이라 부르건, 입자라 부르건 그것은 접촉성을 띤다.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건, 물리적으로 받아들이건 빛은 접촉을 부른다. 그리하여 사진은, 빛에 빚지고, 접촉에 빚진다. 프레임 속 세상을 만.진.다. 물리적으로도 만지고, 심리적으로도 만진다.
그것이 아니라면, 만질 수 없다면, 만질 수 있다고 이해하거나 오해하지 않는다면, 왜 그렇게 많은 ‘은밀한 사진’들이 생산되고 유포되고 적발되고 숨바꼭질을 벌이겠는가.

지난 4월,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6년 동안 여성 1천여명의 신체부위를 몰래 촬영한 40대 남자와, 대기업 과장을 검거했다. 그들이 보유한 사진은 각각 20만장과 2만여장이었다.

지난 달, 충남대천경찰서는 해수욕장에서 아들을 찍는 척하며 은밀히 여성들을 촬영하던 30대 남자를 체포했다. 부산해운대경찰서는 물놀이하던 여성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20대 외국인 남성을 체포했다. 그의 카메라 안에는 50여명의 비키니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의 특정부위를 60차례 촬영했던 40대도 해경에 붙들렸다. 경찰은 전국 해수욕장에 몰카주의보를 발령했다.

이들은 대개 특정부위를 ‘확대촬영’하다가 ‘비교적 쉽게’ 발각되었다. 허나 경찰의 고충이 심상찮다.

“망원렌즈 촬영의 경우 쉽게 적발할 수 있지만, 무작위로 촬영한 뒤 나중에 확대하는 경우엔 단속이 어렵다. 최근 사진기술의 발달로 특정부위를 확대해도 입자가 깨지지 않고, 흔들림마저 개선되어 언제 어디서건 몰카의 위험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척하며 사진을 찍는 경우도 늘었다.”

누구를 잡고, 누구를 놔줄 것인가의 사법적 기로에 경찰이 서 있다면, 찍을 때 확대할 것인가, 찍고 나서 확대할 것인가의 기술적 기로에 몰카족이 서 있다. 하지만 의문이 꿈틀댄다. 이제 ‘몰카’의 판단기준이 ‘확대가능성’ 여부가 된 것인가. 날선 칼을 쥔 것이 살인은 아니듯, 고해상 사진 자체가 몰카일 수는 없다. 두려움은, 우리 모두의 손에 날선 칼이 쥐어져 있다는 자각에서 밀려온다. 해수욕 인파를 보도하는 기자의 사진기에도 칼은 들어있다. 없거나 어지럽거나 어리석은 ‘사진기준’의 세계에서 우리는 찍고 찍힌다. 손쉽게 확대/축소되는 특정부위를 각자의 몸에 넣은 채.

한 장의 사진이여, 이리 보면 추억이건만, 저리 보면 추잡, 여기선 기록, 저기선 관음, 멀리선 예술. 아, 갈피 없는 모순의 애매모호그라피여.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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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9/14 19:46

 




 ‘천인공노할 김밥’의 비행






가슴이 찢어진다, 고 했다. 그게 다였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로만 해야 하는 자의 갈증이 그를 짓눌렀다. 차라리 입을 다물었다. 역설적이게도 다문 입이, 새까맣게 탄 그 얼굴의 꾹 다문 입이 무언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 말을 토하고 싶지만, 피를 토할 것만 같아 차라리 입을 다물겠습니다, 라고 들렸다.

그 충혈된 눈을 기억한다. 말을 찾지 못해 다물 수밖에 없었던 입을 기억한다. 오년 전, 대추리 이장 신종원의 눈과 입이 그랬다. 고향을 사랑한 죄, 마을공동체가 산산이 쪼개지고, 형님아우하던 이들이 원수가 되고, 어릴 적 뛰어놀던 학교가 무너지고, 대단치는 않더라도 단단한 삶을 가능케 했던 들녘이 모조리 파괴되었을 때, 그가 뱉었던 짧은 말도 그랬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어.

그는 이른 바 꼭두각시였다. 그냥 꼭두각시가 아니라, 꼭두각시의 꼭두각시였다. 한나라당 김무성 식으로 말하면 “김정일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외부 종북세력”의 꼭두각시였다. 빨갱이의 ‘언어교란 전술’에 넘어간 시골뜨기인 동시에, 국가안보는 안중에 없이 보상금 몇 푼 더 뜯어내려 생떼 부리는 패륜아였다. 고향을 사랑한 죄목이 그랬다.

제주 강정마을 회장 강동균의 찢어진 가슴에서 대추리 이장 신종원을 꺼낸다. 신종원의 충혈된 눈과 꾹 다문 입을, 강동균의 얼굴에서 다시 보았다. ‘강정 소’라 불리던 다부진 사내가 경찰에 얻어터져 질질 끌려갈 때, 그에게 부과된 죄목은 공무집행방해죄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말 뿐이라고, 때리면 그냥 맞아야 한다고, 저 거대한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건 평화적인 저항뿐이라고, 촛불집회 때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강정 소’가 그렇게 소 끌려가듯 체포되어 가는 걸 주민들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던진 게 김밥이었다. 서귀포 경찰서장의 뒷꼭지로 날아갔다. 날개 달린 김밥이 연합뉴스 사진기자의 렌즈에 걸려들었다. 그날 그 자리, 해군이 모시고 간 기자님들과 논설위원님들이 있었다.

이튿날 <조중동>이 쏟아낸 르포와 사설은 온통 ‘천인공노할 김밥’ 타령이었다. 대추리 미군기지 방해세력이 용산과 4대강과 희망버스를 경유해 강정마을로 침투, 순박한 주민들을 의식화시켜 해군기지 방해운동을 조종하고 있다는, 그것이 결국 김정일을 이롭게 하는 짓이라는 애국적 망발이었다. 그들의 화려한 언변 앞에, 고향을 사랑한 죄를 진 이들은, 신종원들은, 신종원의 가족들은, 강동균들은, 강동균의 이웃들은, 다문 입을 열 수 없었다.

‘안보의 이름으로 짓밟혀도 좋은 평화’란 성립 가능한 언어일까. 안보의 이름으로 찢겨도 좋은 ‘타인의 공동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 대추리가 그랬듯 강정마을은 ‘우리의 이름으로’ 파괴되고 있다.

그날의 김밥은, 사실 우리에게 날아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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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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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9/01 10:12


 





황새울이 구럼비에게

 


긴 밤이었다.
견디기 힘들게 긴 밤이었다. ‘뜬 눈 지새운 밤’이라는 머릿속 상투어가 덜컥 만져지는, 그런 현실도 많지는 않으리라.

봄이 왔다지만,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마다 밤을 각오한 이들이 피운 모닥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올 테면 오라, 는 비장한 각오가 앰프를 통해 흘러 나왔지만, 늙은 농부들의 얼굴에서도 앳된 대학생들의 얼굴에서도 초조함은 가실 줄 몰랐다. 소리 없이 눈알이 움직였다. 각자의 두리번거림은 경계와 탐지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담아두려는, 마을의 기억이 오늘로 끝날지 모른다는, 애착와 종착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두리번거림이었다. ‘추억의 종료’ 앞에 세워진 자들은 두리번거림으로 미련을 드러낸다.

그래서 떨었다. 길고 긴 밤이 추워 떨었고, 작은 마을의 피어린 절규에 응답하지 않는 이 사회의 거대한 무감각에 외로워서 떨었다.

마을은 시시각각 포위되었다. 동이 틀 무렵, 투구를 쓴 이 나라 민생치안의 경찰과 국토수호의 군인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먹구름처럼 닥쳐왔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작은 학교는 포클레인 삽날에 힘없이 부서져 내렸다. 사람을 먹여 살려왔던 황새울 들녘은 철조망과 초소와 군인으로 넘실댔다. 저 건너 미군기지, 캠프험프리의 안전한 언덕 위에선 작전지휘부가 각자의 망원경에 눈알을 박고, 각자의 지휘봉을 휘휘 저어대며, 꾸역꾸역 밀려오는 경찰과 군인과 용역깡패들을 지휘했다. 이른바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었다. 2006년 5월, 평택 황새울의 작은 마을 대추리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잊지 말아야 할 장면이라도, 우리는 쉽게 잊는다. 가끔은 사진마저도 망각을 돕는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작은 탄성이 절로 나오는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 그곳에 해군기지를 지으려고 뭍에서 동원된 경찰병력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구럼비의 풍광과 인사하고 싶어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는 친구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 침탈을 막기 위해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쇠사슬로 서로를 묶고 밤을 지새려 한다는 얘기를 건네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대추리의 긴 밤이었다. ‘추억의 종료’ 앞에서 떨 수밖에 없는, 기억하려는 자들의 비참함이었다. 안보의 이름으로 평화를 짓밟던 작전지휘부의 어둡고 거룩한 명령들이었다.

간을 보려했던 것일까. 육지병력은 ‘이번엔’ 물러갔다. 그러나 올 것이다. 이 유보의 시간은 마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구럼비에서 재현해도 좋은지 우리에게 묻는 것만 같아 두렵다.





<씨네21>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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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8/31 16:00


 





찍힌 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찍는다는 건, 사실은 두려운 행위다.
내가 대체 무엇을 찍은 건지, 이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곱씹어야하는 심리적 절차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목격한다는 건 불안한 일이고, 더구나 저장한다는 건, 후환을 남기는 일이기에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목격은 사회적이거나 사건적인 장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하물며 찍힌다는 건, 작건 크건 공포를 내포한다.
그것은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내가 대체 어떻게 찍힌 것인지 일단 나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이미지의 통제권은 찍힌 자의 손아귀에 없다. 나는 누구일까를 내가 묻는 게 아니라, 찍은 자가 알아서 묻고 알아서 대답한다. 찍힌 자는 찍은 자의 손에 놀아난다. 찍힌 자의 이미지는 수시로 소환되고, 수시로 분류된다.

찍히는 순간, 그걸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알면 알기에, 모르면 모르기에 사람을 옥죈다. 괜히 나를 찍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언제 그 자가 나에게 나를 들이밀지 알 수 없고, 나는 그것이 어떤 나일지 모름으로 인해 떤다. 사진은 찍건 찍히건, 원하건 원치 않건 일말의 긴장을 조장한다.

하루에 사진을 찍어대는 횟수가 밥숟가락을 뜨는 횟수보다 더 많아진 시대에 살면서 사진을 피하기란, 적절한 비유를 대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워졌다. 지금의 ‘사진상황’은 개인들의 사소하고 허술하지만 이루 짐작하기 난감한 이미지 수집욕에 의해, 조직화된 자본과 권력의 치밀한 축적과 분류욕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자본과 권력의 이미지 축적은 목적이 뚜렷하다. 분류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거대한 욕망이다. 히틀러는 분류하는 자였고, 분류의 정치적 의미를 아는 괴물이었다. 분류는 결국 분리를 꿈꾼다. 1880년대 인체측정사진이라는 새로운 범주의 사진을 만들어낸 알퐁스 베르티용이 파리 경시청의 서기관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가 저술한 <사법사진>에는 신체측정술이 설명되어 있지만, 그 목적은 어떻게 사진으로 범죄자를 판별, 분류, 색출할 것인가였다. 권력은 언제나 적극적인 후원자였다. 베르티용의 꿈은 사진기술의 발전과 함께 권력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계승 발현되었다.

언제부터일까. 집회 시위의 현장에 또 하나의 사진그룹 ‘채증반’이 한둘을 넘어 수십명에 이르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엔 기자양반보다 채증양반의 수가 더 많다. 그들의 사진기에선 찰칵소리가 나지 않고, “넌 찍혔어!”라는 경고음이 나온다. 찍힌 사람들은 위축된다. 잡히거나 이름을 대지 않았는데도 소환장이 집으로 날아든다. 경찰청이 내놓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렇게 찍어 ‘영상판독시스템’에 의해 ‘분류된’ 이들이 지난 5년 반 동안 2만3천여 명에 이른다.

찍히는 게 두려운 어떤 이유는, 찍혔다는 광학적 사실이 아니라, 수집 분류될 거라는 후환 때문인지 모른다. 분류는, 색출을 기다린다.





<씨네21> 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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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8/27 09:25



종이매체와 온라인매체에서 '제목뽑기'는 참 다르다.

두 매체 모두에서 제목은, 기사내용의 집약일 뿐만 아니라 미끼로써 기능한다.

하지만, 그 정도가 다르다.

종이매체에서 제목이 '간판'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하다면, 온라인매체에서 제목은 '미끼'의 역할에 더 충실하려고 하는 것 같다. "온라인 기사는 제목 장사가 반이상"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은 정확하게 매체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제목을 둘러싼 글쓴이와 편집부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온라인매체에서 더 심하지 않을까.

나는 겨우겨우, 간신히 글을 쓰는 편이라, 제목을 뽑을 때도 신경이 곤두선다. 
쉽사리 제목을 잡는 경우도 있지만, 어렵게 어렵게, 때론 가까스로 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지난 3년동안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는 <씨네21>의 경우 내가 뽑아 보낸 제목이 수정된 경우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였다. 나를 존중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뽑은 제목이 그럴만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매체에 송고한 경우, 제목이 그대로 반영된 경우가 거의 없었다.

늘 더 선정적이었다. 잘 뽑은 제목이라고 인정해 줄만한 것도 여럿이었지만, 일단 '모니터'에서 더 눈에 띄게, 마우스 클릭을 '유인'하는데 방점이 찍힌 제목이 대부분이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은, 온라인 제목뽑기에서 '글에 금칠을 해놔도, (제목을) 클릭해야 기사'라는 현실이 되니까.

이럴 때 필자는 편집부에 감사해야 할까, 분노해야 할까.

어제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던 글의 '바뀐 제목'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 다녔다. 자꾸 떠올랐다. 엄밀하게 말해 틀린 제목은 아니었다. 틀린 제목은 아니었지만, 옳은 제목도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목 덕분(아마도 그럴 것이다)에 그 글은 4만명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나는 많은 이들이 그 글을 읽기를 원했다. '희망버스의 이유'와, 그 '기록의 이유'를 말해야 했고, 또한 요청을 받기도 했고, <희망버스> 기획팀의 바닥난 재정에 우리가 힘겹게 만든 책 <사람을 보라>가 도움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 글을 읽은 숱한 이들이, 제목만 본 게 아니라면, 글을 모두 읽어내려갔다면, 내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알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제목은 나를 편치 않게 한다. 내가 쓴 글의 내용에서 뽑아낸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제목은 글의 얼굴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보냈던 제목에도 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제목이 잘 안뽑아지는 글이었다. 여러 제목을 뽑아 보았다가,

사람사진만큼 쉬운 게 없고
사람사진만큼 힘든 게 없네

- 우리가 <사람을 보라>를 펴낸 이유

로 잡았는데, 다시 보아도 이건 또 아닌 것 같아

조남호의 '희망'과 김진숙의 '절망'이 마주할 때
우리는 무엇을 보았나, <사람을 보라>를 펴낸 이유


로 수정했다. 하지만.... 결국 제목은 편집부를 거치면서 '김진숙과 전태일의 유서, 같지 않기를!'이 되고 말았다. T.T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7153&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




아휴.... 잊어야지....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것을 사수하려 부르스를 치는 것일까....
어쩐지 불쌍해진 내 글에, 여기서라도 첫 제목을 달아 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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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진만큼 쉬운 게 없고
사람사진만큼 힘든 게 없네

- 우리가 <사람을 보라>를 펴낸 이유






누구나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세상에, 우리는 산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저마다는 저마다의 사진기로 세상을 보는 방법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이제 사진기는 사진기에만 붙어있는 게 아니라, 전화기에도 노트북에도 심지어 장난감이나 자동차에도 붙어있다.

하루에 사진 찍는 횟수가 밥숟가락 뜨는 횟수보다 많아진 세상에, 우리는 산다.
현대사회는, 적어도 한국사회는 사진범람공화국이라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보려는 것일까, 무엇을 재현하려는 것일까, 어떤 장면을 나누려는 것일까. 도대체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본다는 것은, 보여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유발한다.
재현은, 재현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요구한다.

사진은, 오만가지 기능을 품고 세상을 활보하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는 ‘목격의 전달기능’이다. 목격자에겐 증언의 욕망이 의무처럼 뒤따른다.



의문이 경이로움이 될 때


희망버스라는 듣도 보도 못한 계획에 참여해 달라는 시인 송경동의 애절하고 집요한 꾐에 빠진 사진가 예닐곱이 한중중공업 담을 넘을 때만해도 그것은 하나의 의문이었다. 의문이 그렇게 쉽게 경이로움으로 바뀔 줄 아무도 몰랐다. 그 날의 새벽은,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정말 이렇게 살아도 좋은지를 저마다에게 묻는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케 한 시간이었다. 연대였다. 우리가 잃어버렸고, 결국 되찾아야 할 것은, 눈물의 연대였다. 눈물과 땀이 뒤섞인 소금의 연대였다.

그러므로 “다시 와 달라”는 해고노동자들의 호소에 “가는 듯 돌아오겠다”고 응답한 건 희망버스 기획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탑승자들이었다. “이 버스는 재가동되어야 한다”고,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저 소금꽃들이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저마다 아우성쳤다. 의문이 경이로움이 되는, 그런 장면 앞에서 사진기들이 작동한 건 당연하다.

약속대로 2차 희망버스가 재가동되었을 때, 더 많은 사진가들이 버스에 올랐다.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졌다. 부산역에서 시작된 평화행진이 폭우를 뚫고 영도에 닿았을 때, 탑승객들을 맞이한 건 한진노동자들이 아니라 거대한 물대포 장벽이었다. 물대포와 최루액이 쏟아지는 봉쇄와 저항의 장면들이 고스란히 사진기에 담겼다.

3차 희망버스는 조선소 앞 산복도로 골목골목을 헤매는, 봉쇄의 빈틈을 찾아 걷고 또 걷는 산행이었다. 왜소했던 희망버스가 거대한 물결이 되어가는 사이, 경찰에게도 응원군이 생겼다. ‘친북좌파 척결과 어르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성난 눈을 부릅뜬 이른바 ‘어버이’들께서 주먹을 휘두르며 버스로 골목으로 난입했다. ‘절망버스는 꺼지라’는 관변단체들의 현수막도 곳곳에 나부꼈다. 어느새 희망버스는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뜨거운 버스가 되어 있었다. 놓칠 수 없는 장면들, 기억해야 할 장면들 앞에서 각자의 사진기는 쉼 없이 찰칵댔다.

그랬던 그 버스에, ‘4대강 3종세트’(사진집, 시집, 에세이)를 기획했던 아카이브 출판사 박지홍 주간이 탑승하고 있었다. 사진가들과 박 주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금 당장의 연대’를 ‘사진으로’ 해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처음에 뜻을 모았던 소수의 사진가만이 아니라, 희망버스를 목격하고 기록했던 더 많은 사진가들의 참여가 필요했다. 매체 소속 여부, 나이와 경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목격한 자의 책임이 이 긴급한 사진집 한 권으로 땡처리 될 수 있는 건 아닐지라도, 희망버스에 몇 모금의 윤활유를 넣을 수는 있을 거라는 점에 모두가 긍정했다.

참으로 긴급하게, 하지만 밀도 있게, 그러므로 몇날 며칠을 새며, 따끈따끈한 사진집 한 권을 만들어 냈다.


<사람을 보라> 앞표지와 뒤표지



무엇을 보는가, 사람을 본다


용산을 되돌아본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를 들을 줄 몰라서, 생사람 여섯이 망루에서 타 죽었다. 살려고 올라간 사람들이 죽어서 내려왔다.

한진을 되돌아본다.
벌써 몇 명이 그곳에 영혼을 묻었는가.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의 슬픈 이름들이 저 거대한 크레인에 보이지 않게 새겨있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그들의 얼굴조차 모른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하지만 85호 크레인에서 233일째 외롭게 싸우고 있는 김진숙을, 조 회장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살려고 올라간 김진숙이 죽어 내려온다면, 조남호는 지금껏 그래왔듯 쉽사리 그녀를 잊겠지만, 더 이상은 안된다. 지금은, 망각기계가 되어버린 조 회장 당신이 치료받아야 할 시간이다. 온 몸을 던져 싸워온 김진숙이 살아 내려와 지친 몸을 달래야 할 시간이다.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를 ‘김진숙의 유서마저 같은 나라’로 만들어 버린다면, 우리는 희망이라는 언어를 버려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 사진집의 제목은 <사람을 보라>다.
처음엔 제목 아래 “남이 괴로운데 나는 아무렇지 않다면, 옆에서 누군가 고통의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내 귀에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사람이다”라는 문구를 넣었으나, 최종작업에서 뺐다. 왜 그랬을까,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33x25cm의 커다란 판형에 124쪽 분량이다. 사진만 빼곡한 건 아니다. 본문에 실린 <이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는 시인 송경동이 쓴 ‘희망을 절규하는 이유’다.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와 <끝나지 않은 기다림>은 소금꽃 김진숙이 쓴 ‘우리 자신의 추모사’다. 뒤편에는 참여사진가 23명의 짧은 후기도 담겨있다.

인세와 수익은 바닥난 희망버스의 연료를 채우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오는 27일 4차 희망버스가 가동되는 서울의 거리에서 기름을 넣어줄 수도 있고, 아래에 링크된 주소를 통해 온라인에서 기름을 넣어 줄 수도 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4140
http://www.yes24.com/24/goods/5589575?scode=032&OzSrank=9


이 책은 우리의 시각적 목격담이다.
우리가 목격담을 나누는 이유는, 이런 목격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사람사진만큼 쉬운 게 없고, 사람사진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걸, 우리는 절감한다.

 




펴낸 곳 | 도서출판 아카이브
사진 | 권우성 김수진 김홍지 김흥구 노순택 류우종 박민혁 박승화 박정훈 양태훈 오은진 유성호 이명익 이미지 이재원 이정선 이치열 임태훈 정기훈 정택용 조재무 최형락 한금선
글 | 김진숙 송경동 공선옥 외
편집 | 박지홍 박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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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8/04 16:52


 




소금꽃 나무에 오른 쥐사나이,
우리는 당신을 본다!



그는, 정확하게 말하면 쥐를 그린 사내다.

쥐라 불리는 절대권력자를 국가포스터에 삽입했다가 국가원수모독 혐의로 체포 기소됐다. 그러므로 그를 ‘쥐사나이’라고 부르는 건 틀렸다. 그는, 쥐를 희롱한 사나이 또는 쥐를 그린 사나이로 불려야 할 것이나, 나는 그를 쥐사나이라 적는다. 그것은 틀렸지만 간결하고, 사실은 모호한 호칭이어서 끌린다. 이른바 ‘쥐그림 사건’은 비극이 흐르는 동시에 희극이 파도처럼 출렁대는, 우울 경쾌 모호 법정드라마니까.

그를 보았다. 등록금 반값을 요구하는 학생들과 부모들이 이른바 ‘연대투쟁’에 나선 날이었다. 대통령이 시장이었던 시절, 35억원을 들여 만든 거대한 소라껍데기 아래였다. 소라껍데기는 3900억원짜리 인공개천의 시발점을 알리는 상징물로써, 연간 100억원에 달하는 청계천의 유지비를 생각건대, 사실은 저렴한 예술작품이었다. 그 저렴한 작품 아래, 저렴하다 못해 찌질한 인생들이 우글대며 고작 몇백만원의 등록금을 깎아 달라 떼를 쓰고 있었다. 국가브랜드 이미지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풍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들고 거기 서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댓 살 배기 딸아이가 옆에서 놀고 있었다. 국제적 명성의 미술가 올덴버그에게 위탁 제작되어 국가상징물로 승격된 35억원짜리 예술작품과 몇 천 원짜리 현수막에 스프레이로 그려진, 검찰에 의해 ‘낙서’라 명명된 무명딴따라의 작품은 일단 가격에서 비교불가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옆, 수천억 원을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꼬맹이, 그의 뒤, 한 학기 등록금을 내기 위해 커피숍 알바 1579시간을 해야 하는 나라가 정상이냐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나는 사진을 찍었다. 돈이 넘실댔다. 그 사진은, 계산기를 두드려야 봐야 해독이 가능한 이미지다.


다시 그를 보았다. 부산 영도. 검은 옷에 운동화, 딱딱한 모자에 면장갑을 낀 건장한 사내들 앞에 선 쥐사나이는 작아 보였다. 험악한 사내들이 한 대 치면, 찍 소리도 없이 나가떨어질 것만 같았다. 한진중공업이 고용한 용역사나이들이 그를 노려보는 순간, 그가 내민 싸구려 작품 속 글귀, WE ARE WATCHING YOU ! 우리는 당신들을 보고 있다!

잠시 혼란스런 사이, 그는 사라졌다. 다시 본 건 골리앗 크레인 위, 용접노동자 김진숙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8일째 기나긴 투쟁을 벌이고 있던 85호 크레인 중턱이었다. 새벽 3시의 어둠이 삼켜버린 바다를 향해 선 채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곳은 좌절의 크레인. 20년 전 박창수의, 8년 전 김주익과 곽재규의 좌절이 영혼으로 떠도는 지상으로부터 30미터.


쥐사나이 박정수와 소금꽃 김진숙이 흔들리는 난간을 붙들고 섰던 85호 나무의 그 새벽, 그림 속 쥐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그대들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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