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잡는, 빨갱이 숨바꼭질
팔뚝에 완장을 찬 사내가 눈을 부라린다. 그 섬뜩한 눈알을 굴려 집안을 뒤져댄다. 이 잡듯이 샅샅이 훑는다. 오른손에 움켜쥔 죽창으로 여기저기를 쑤셔댄다. 없다. 이런 쥐새끼 같으니! 옷장을 뒤집어엎고, 마룻장을 뜯어봐도 없다. 심증으로 보나, 누군가의 밀고로 보나 아직 숨어있는 게 확실한데, 없다. 부아가 치민다.
마당 한켠에서는 군복을 입은 사내가 어머니를 윽박지른다. 당신 아들 숨기고 있는 거 다 알고 왔으니 내놓으란다. 이제라도 반성하고 조국의 품에 안기면 모든 걸 용서해 주겠단다. 허리에 찬 권총이 번뜩인다. 어머니는 사시나무마냥 벌벌 떤다. 말린 고추가 담긴 채반을 그대로 들고 버틸 힘이 없다. 다리에 맥이 풀린다. 아니나 다를까, 군홧발이 채반을 걷어찬다.
“이런 종간나 새끼, 빨리 나오라우!”
숨어있던 아들의 심장은 쿵쾅댄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주먹이 으스러지도록 세게 쥐어본다. 허나 그뿐, 분노의 눈물을 삼킨다.
익숙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 그 ‘어디선가’를 특정하지는 말자. 한국전쟁을 다뤄 온 숱한 영화와 드라마, 책자들이 거의 이런 장면을 빠뜨리지 않고 묘사해 왔으므로. 우려먹고 또 우려먹고도 차마 버릴 수 없어 다시 우려먹는 ‘조강지장면’이므로.
이 장면은 강한 정서적 호소력을 가진다. 감정을 이입시킨다. 선악을 선명하게 구분한다. 빨갱이는 악마, 나머지는 천사. 그리하여 숨긴다. 로맨스로 위장한 천사의 스캔들을.
똑같은 전쟁을 다룬 북한영화에서는 그 장면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반대로 묘사된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난 과거사의 추적을 통해 우리(!)의 추악상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그때 거기에 천사는 없었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반대의 경우! 이쪽도 저쪽도 인정치 않지만, 영원히 숨길 수도 없는 그 ‘반대의 경우’야말로 전쟁의 일상이자, 진정한 속살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깨달아야만 하는데, 깨달을 때도 되었는데, 아직 멀기만 하다.
완장을 찬 천사가 좌파적출을 선언하고 눈을 부라린다. 사람 좋던 양촌리 둘째 아들이 천사의 죽창을 쥐고 좌파의 목을 가른다. 자나 깨나 준법을 외치던 율법천사는 자신이 만든 율법에도 예외는 있다며, 좌파선생 리스트를 만천하에 뿌려댄다. 리스트에 뱉은 침이 자기 얼굴에 떨어지는데도 그걸 모른다. 뻘겋게 독이 오른다. 얼굴로 치자면, 당신이 빨갱이다.
‘그때 그 전쟁’은 이렇게 ‘지금 이 전쟁’이 되고, ‘반대의 경우’는 여기저기서 자신을 드러낸다. 천사도 악마도 아닌, 사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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