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 잡글/잡글2014/01/29 17:06

 

 


그해 봄, 열한 분의 열사를 만났다.

 

그해 봄은 이른바 ‘열사정국’이라 불린다. 이제 막 어른이 되었는데, 나의 삶에 간섭이란 없을 것만 같았는데, 봄부터 죽음이었다. 아니, 죽임이었다. 1991년 오월, 한 청년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삶을 잃었다. 명색 국가의 수족인 경찰이 죽으라고 때렸겠는가만, 죽도록 때린 건 사실이었다. 타살이었다. 실수 따위가 아니었다. 허나 국가의 대답은 어떠했던가.

 

저 죽임에 이 죽음으로 항의하는 수밖에 없다, 고 누군가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불살라 저 죽임의 의미를 산 자의 가슴에 새기리라, 고 그들은 결심했을 것이다. 두렵지 않았을까. 오천만 가지 생각들이 그들의 결행을 가로막고 훼방하고 돌아서게 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런 잡생각에 잠 못 이루곤 했다. 그들은 평범한 내 또래였으니까.

 

박창수의 주검이 도난당한 건 서곡이었는지 모른다. 김기설의 자결은 “죽음의 배후세력을 대라”는 광풍으로 불어와 세상을 얼어붙게 했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죽음을 지시하고 유서마저 대신 써줬을지 모른다는 추정,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꿰어 맞춰야 한다는 검찰의 충성심은 ‘유서대필사건’을 창조해냄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 가장 엄정하고 과학적 사실만을 말해야 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유서대필이 맞다”고 감정하자, 그 모든 죽음들은 쓰레기만도 못한 희생이 되고 말았다. 강기훈은 동료의 죽음을 사주한 파렴치한이 되어 감옥에 갇혔다. 벌써 23년 전 일이다.

 

헌데 아니란다. 김기설의 유서를, 김기설이 쓴 게 맞단다. 엄정하고 과학적이어야 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이제야 정신 차리고 다시 감정해 보니, 강기훈이 아니란다. 이십대 강기훈이 오십대 강기훈이 되어버렸는데, 아니란다. 천하의 몹쓸 그 놈이, 이제 누구도 감히 위로하기 힘든 고통과 좌절의 당사자였단다. 다행인가? 몹시도 다행이다. 허나 화가 치민다. 이 빌어먹을 국가여, 누가 그의 미쳐버릴 듯한 세월에, 모욕당한 그 죽음들에 무릎 꿇고 사죄할 것인가 말이다.

 

 

사진의 털 #128
 <씨네21> 2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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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3/12/24 01:59
 
 


 

1. 시월의 마지막 날, 한 노동자가 세상을 버렸다.
“배고프고, 힘들었다.” 그가 남긴 말이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은 1963년이 아닌, 그렇다고 1983년도 아닌, 2013년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의 일터는 영세공장이 아닌, 부도직전의 쓰러져가는 회사도 아닌, 굴지의 글로벌 기업 어쩌다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버린 수퍼자본 ‘삼성’이었다.
...
노동자 최종범의 죽음은 오늘의 노동이 어떤 지경인지를 증언함과 동시에, 오늘의 자본이 어떤 경지에 올라있는지를 증언한다. 최종범의 가슴에 수놓인 ‘삼성’은 거짓이었다. 그는 이른바 하도급 노동자였다. 삼성은 다를 거라는 환상은 어떤 면에서 착각이었으나, 어떤 면에선 현실이었다. 삼성은 다르지 않았고, 허나 확실히 달랐다.

2. 십이월의 첫 주, 쪽지가 날아왔다. 후배였다. 웬일로 겸손한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탁의 건이었다. 돌 사진을 찍어달라는 얘기였다. 난데없는 요청에 경험도 전무하므로 단박에 거절해야 하리라. 하지만 못했다. 최종범의 아기, 1년 전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했다던 존재, 최별의 돌잔치라는 거였다. 후배는 기특하고도 영악하게 우리집 늦둥이의 안부를 물었다. 고로 내가 적임자라는 얘기였다. 2013년 12월 13일과 15일에 나는 첫 돌을 맞은 두 강아지의 사진을 찍었다. 최별은 붓을, 노은은 연필을 쥐었다.

3. 두 물음이 사무친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무엇이 “새로운 삶”을 약속했던 아빠 최종범을 벼랑으로 민 것일까. 우리의 강아지들이 각자의 붓과 연필로 그리고 적어야 할 세상이 이토록 무겁고 무서운 것이라면, 축복이란 얼마나 공허한가. 안녕할 리 없다, 이대로라면. 안녕하지 못한 어른들이 건네는 ‘안녕!’은 마치 삼성의 ‘가족!’이 내뱉는 헛된 인사처럼 씁쓸하다. 실은 기만적이다.


사진의 털 #125
<씨네21>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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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성탄 이브로군요. 저는 비록 예수를 믿고 따르지 아니하나, 세상의 가난하고 고단한 이들을 예수로 섬기며 낮은 곳으로 향해 온 참된 성직자들의 존재만큼은 믿습니다. 대추리에서, 용산에서, 강정에서, 밀양에서, 쌍용차 공장 앞에서 숱하게 그 분들을 보았습니다. 별이의 돌잔치를 '아빠인듯' 마련해 주신 이들도 그 분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야말로 정치를 올곧게 세우는 데 동참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새 교황님의 말씀은 얼마나 근사한가요.

세상의 모든 강아지들이 복에 겨운 성탄이기를!
예수님도 한 때는 귀여운 강아지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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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vs 5.16

 


지난해, 어떤 분들이 줄기차게 외쳤던 '준비된 여성대통령'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그때는 후보였기에 준비된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으리라. “준비가 덜 되었다” 고백하는 후보에게 “솔직해서 좋다”며 격려표를 던질 유권자가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한 줌 덜떨어짐을 갖춰야 비로소 사람일진대, 대통령 후보라는 자격은 그걸 숨겨야만 표를 얻는 존재부정의 자리. 멸균된 바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유권자도 알았지만, 그는 멸균됐다 말했고 유권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는 51.6%의 득표, 당선이었다.

 

우리의 공화국이 정당정치와 대의정치에 기반하고 있으니, 그의 당선은 정당하며 축하받을 일이다. 아니 그럴 뻔했다.
“준비됐다”는 그 선언이 허풍이어서가 아니다. 대통령을 두 번 해보는 게 아니요, 왕년에 ‘사실상 퍼스트레이디’였다 해도 인형이었을 뿐인데, 집권초기 시행착오는 비판하면서도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준비의 의미’가 달랐다는 데 있다. 그의 당선을 ‘준비했던’ 이들의 활약상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국가안전에 관한 최고수위 작전을 책임지는 국정원 수장 원세훈이 요원들에게 하달한 지침이 무엇이었나. 국내정치현안 개입, 국정홍보, 4대강사업 찬양, 이른바 여론조작이었다. 대북공작을 내남공작으로 펼쳤다. 댓글요원들이 발각되자 ‘인권오리발’을 내밀었다. 박근혜 후보의 일성은 “불쌍한 여성의 인권을 짓밟지 말라”는 것이었다. 화답하듯,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은 한밤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무혐의였다. 그의 집요한 수사방해가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원세훈은 도피하려다 제지당했다.

 

이것이 ‘준비’였나? 국정준비가 아니라 공작준비. 하지만 당신들의 준비는 국민이 비준해 줄 수 없는 준비가 아닌가. 그대의 51.6%에서 자꾸 5.16 ‘혁명 또는 쿠데타’의 준비된 향기를 맡는 건 내 지나친 후각의 탓일까.

 

 

<씨네21> 사진의 털 #109 _ 3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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