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 잡글/잡글2014/09/13 16:24


 
과분한 격려와 축하에 잠시 멍했습니다.
하루를 보내면서, 이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국가가 벌인 못된 짓들을 시시콜콜 쫓아다니며 욕을 해댄 작업을, 국가가 운영하는 미술관에 번듯하게 전시해놓은 꼬락서니가 말 그대로 모순은 아니냐”고요. 맞는 말입니다.

한 때, 제가 새 수첩을 사면 맨 앞에 써놓곤 했던 문구가 이랬습니다. ...

“모순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그 모순들이 함축하는 것 - 그것들이 무엇을 가능케 하고 무엇을 배제하는가 - 에 대한 실천적 감각을 필요로 한다.”

에비게일 솔로몬 고도우가 했던 이 말이 항상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저는 노순택이 아니라 모순택입니다.

어느 새벽, 까만 양복을 입고 밀려오던 건장한 남자 무리들을 떠올립니다. 늙은 농부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어마어마한 군사기지를 짓고자 동원된 깡패무리였습니다. 국가는 자신이 직접 손대기 꺼림칙했던 그 일을 용역깡패들에게 맡기더군요. 너른 들녘으로 검은 양복쟁이들이 포클레인을 앞세우며 밀려오는데 늙은 농부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을까요. 볏짚을 태우고 연기를 피워 그들의 접근을 잠시라도 막아보겠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그 처절한 풍경을 사진기 뒤에 숨어 지켜보았습니다. 셔터를 꾹꾹 눌러대면서요. 인화지로 뽑아놓고 보니 그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근사했습니다. 사진은 얼마나 저열하게 근사한 것인지요.

용산참사가 벌어지던 1월 20일의 몸서리치게 춥던 새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망루에 불이 붙어 사람이 죽고 있는데, 했던 일이 고작 셔터를 눌러대는 짓이었습니다. 이가 갈리는 장면이었습니다. 헌데 사진으로 뽑고, 미술관에 걸고 보니, “대단한 작품”이라는 겁니다. 사진은 얼마나 초라하게 대단한 것인지요.

“국가가 벌인 못된 짓들을 시시콜콜 쫓아다니며 욕을 해댄 작업”을 근사한 벽면에 걸고, 혹은 책으로 옮겨 당신의 눈에 띄도록 한 것이 저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모순이기도 했고, 모순되게도 미술의 세계에서는 모순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당신에게 그 장면들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런 장면넝마주이로 살 줄 예전엔 몰랐습니다. 앞으로 어디서 허우적댈지, 뭘 줍고 다닐지, 어디서 자빠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실대며 걸어다녔으니, 비실대며 걷겠지요.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시신이 하나 둘 인양될 때 정말로 무서워서 팽목항에 가질 못했습니다. TV를 보는 것도, 인터넷을 접속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이 KBS를 항의방문하고, 청와대 앞 길바닥에서 오들오들 떨며 비참한 밤을 새던 그날 처음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엄마 아빠들이 자신과 똑 닮은 아이들의 얼굴을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를 견딜 수 없어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었습니다. 어버이 날이었죠, 그날이.

이튿날 안산에 내려가 볼 용기를 냈습니다. 5월 10일, 시민들이 합동분향소를 에워싸고 인간띠잇기를 하며 노란 풍선을 하늘로 띄워 보냈던 날에도 안산에 갔더랬죠.

하늘로 올라가는 노란풍선들을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한 풍선에 편지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모두가 입 안에 담고 있던 말이 “기억할게, 잊지 않을게”였다는 건 알죠.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고, 특별법을 약속하고, 유가족의 가슴에 한이 맺히지 않게 하겠노라 단호하게 얘기할 때, 이 아픔은 참으로 크지만 그 진상만큼은 밝혀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을 모욕하고 조롱하고 음해하는 짓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철없는 무리들만이 아닙니다. ‘걸어다니는 입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이 그런 짓을 일삼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지금까지 유일하게 요구해온 “진상규명” 그걸 못하겠다니요. 지금도 국가기관에 의해 증거물들이 감춰지고 삭제되는 마당에 수사권도, 기소권도 없이 어떻게 진상조사를 하라는 것인지요.

용산참사 때도 경찰은 “수사기록을 제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법집행! 법집행!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에는 초법 탈법 위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식물조사위로는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사실을 밝히는 것이 세월호에서 생을 다한 이들에 대한 산 자의 예의고, 그것이 곧 장례입니다. 우리는 아직 조문객이 되지 못했습니다.

노란 풍선이 편지를 매달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아름답나요? 사실은 추악하죠.
“기억할게, 잊지 않을게”라고 약속해놓고, 피로감을 얘기하잖아요, 우리는.

털은 고작 털이지만, 몸에서 비롯되지 않은 털이란 없습니다.
이를테면 사진은 세상의 털이지요. 몸통은 아닙니다. 하여 털을 보여 드릴 테니, 그 털이 어떤 몸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 보시렵니까. 그러면 털에서 거울을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털로 된 거울’을 만들고자 당분간은 거리에 머물 생각입니다.
격려와 축하말씀에 일일이 답글 달지 않고, 이 글을 감사의 인사로 갈음할까 합니다.
 
 
2014.9.12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싫어증
TAG
분류없음2014/08/06 23:58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Sneaky Snakes in Scenes of Incompetence

 


 

"우리를 공기처럼 감싸고 있는 것은, 분단만큼이나 사진이다.”




목격자에게 책무가 있다면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억일 수 있고, 기록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개입일 수도 있다. “그곳에 윤리가 스며든다”고 외치는 이도 있다. 기억과 기록, 하물며 개입도 진술을 필요로 한다. 허나 진술이 진실의 반려자인가. 그들의 관계는 아리송하다, 엇갈린다. 이 엇갈림이야말로 진술의 한계이자 답답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아닐까. 모든 목격자의 진술에는 결함이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한 일이라곤 싸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바라보는 일이었다. 사진기라는 넝마상자에 이미지를 주워 담는 일이었다. ‘궁금함’이라는 다소 엉뚱한 기준이 있었고, 분단체제는 까면 깔수록 속을 알 수 없는 만화경의 풍경을 펼쳐주었기에 나는 집착했다. 첫 작업 <분단의 향기>에서 시작해 <얄읏한 공> <붉은 틀> <비상국가> <좋은, 살인> <망각기계>에 이르기까지. <어부바>마저도 분단목격담의 일환이었다. 이 작업들을 가로지르는 문장이 무엇일까. 분단은 오작동으로써 작동한다. 작동이 오작동이요, 오작동이 곧 작동인 신기를 보여준다.

나와 사진기가 함께 싸돌아다니며 채집한 장면들이 이번 전시에 담겨 있다. 매향리 미공군폭격장, 여중생 압사사건, 초대형 미군기지확장으로 강제이주 당했던 평택 대추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특별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 용산참사, 전임 대통령의 자결, 쌍용차 대량해고사태, 천안함 침몰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강행, 고압송전탑 문제로 시름하는 밀양, 공공자산 민영화문제, 내란음모 사건, 세월호 참사까지 지난 10여 년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과 장소가 이 전시의 밑바탕이다. 잔인한 풍경이었다 말할까. 아니, 잔인하기 전에 ‘무능한 풍경’이었다.

사진이 있다. ‘그때, 그곳’에 사진기와 사진사가 있었다.
재현의 역사에서 사진의 좌표는 독특하다. 기술(技術)로써 기술((記述)을 가능케 한 요상한 기술(奇術)이 사진이다. 젊다. 태어난 지 175년밖에 안되었으나 사진은 시각재현의 역사를 새로 쓸 만큼 유능했다. 이제 사진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교활하다. 사진은 필연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필연적으로 감춘다. ‘그때, 그곳’을 보여주되, 곧이곧대로 보여주는 사진이란 발명된 적도 없다.

사진은 틀 안에 담긴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사각형 안에는 포착된 대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기와 사진사의 위치가 암시되어 있다. 그는 누구인가. 이른바 ‘현장’에서, 특히 사회갈등의 현장에서 사진기와 사진가는 어떤 모습으로 동작하는가. 목격자라 불리는 이들의 풍경, 이것은 내 오랜 관심사였다.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일부러, 나는 나의 분신들을 사진기에 담아왔다.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사진이 근사할지라도, 그것을 담는 과정마저 근사한 것은 아니니까. 가끔은 추했다 말하는 것이 솔직하리라. 허나 추악함이야말로 나를 구성하는 성분이 아니던가. 나를 대면하는 일, 더구나 나 아닌 다른 사진가를 바라봄으로써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은 오만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은 찰칵대고 또 찰칵댄다.

젊은 뱀처럼 유능하며 교활하다. 허나 그것이 무능의 반대말이란 말인가.
사진은 겉을 다룬다. 겉만 다룬다. 안을 생각함, 그것은 사진의 몫이 아니다. 누구의 몫일까.

나는 찍는다, 고로 찍는다.



*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본관(과천)
* 기간 : 2014.8.5 - 11.9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싫어증
TAG
잡생각, 잡글/잡글2014/01/29 17:06

 

 


그해 봄, 열한 분의 열사를 만났다.

 

그해 봄은 이른바 ‘열사정국’이라 불린다. 이제 막 어른이 되었는데, 나의 삶에 간섭이란 없을 것만 같았는데, 봄부터 죽음이었다. 아니, 죽임이었다. 1991년 오월, 한 청년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삶을 잃었다. 명색 국가의 수족인 경찰이 죽으라고 때렸겠는가만, 죽도록 때린 건 사실이었다. 타살이었다. 실수 따위가 아니었다. 허나 국가의 대답은 어떠했던가.

 

저 죽임에 이 죽음으로 항의하는 수밖에 없다, 고 누군가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불살라 저 죽임의 의미를 산 자의 가슴에 새기리라, 고 그들은 결심했을 것이다. 두렵지 않았을까. 오천만 가지 생각들이 그들의 결행을 가로막고 훼방하고 돌아서게 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런 잡생각에 잠 못 이루곤 했다. 그들은 평범한 내 또래였으니까.

 

박창수의 주검이 도난당한 건 서곡이었는지 모른다. 김기설의 자결은 “죽음의 배후세력을 대라”는 광풍으로 불어와 세상을 얼어붙게 했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죽음을 지시하고 유서마저 대신 써줬을지 모른다는 추정,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꿰어 맞춰야 한다는 검찰의 충성심은 ‘유서대필사건’을 창조해냄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 가장 엄정하고 과학적 사실만을 말해야 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유서대필이 맞다”고 감정하자, 그 모든 죽음들은 쓰레기만도 못한 희생이 되고 말았다. 강기훈은 동료의 죽음을 사주한 파렴치한이 되어 감옥에 갇혔다. 벌써 23년 전 일이다.

 

헌데 아니란다. 김기설의 유서를, 김기설이 쓴 게 맞단다. 엄정하고 과학적이어야 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이제야 정신 차리고 다시 감정해 보니, 강기훈이 아니란다. 이십대 강기훈이 오십대 강기훈이 되어버렸는데, 아니란다. 천하의 몹쓸 그 놈이, 이제 누구도 감히 위로하기 힘든 고통과 좌절의 당사자였단다. 다행인가? 몹시도 다행이다. 허나 화가 치민다. 이 빌어먹을 국가여, 누가 그의 미쳐버릴 듯한 세월에, 모욕당한 그 죽음들에 무릎 꿇고 사죄할 것인가 말이다.

 

 

사진의 털 #128
 <씨네21> 2014.1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싫어증
TAG
잡생각, 잡글/잡글2013/12/24 01:59
 
 


 

1. 시월의 마지막 날, 한 노동자가 세상을 버렸다.
“배고프고, 힘들었다.” 그가 남긴 말이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은 1963년이 아닌, 그렇다고 1983년도 아닌, 2013년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의 일터는 영세공장이 아닌, 부도직전의 쓰러져가는 회사도 아닌, 굴지의 글로벌 기업 어쩌다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버린 수퍼자본 ‘삼성’이었다.
...
노동자 최종범의 죽음은 오늘의 노동이 어떤 지경인지를 증언함과 동시에, 오늘의 자본이 어떤 경지에 올라있는지를 증언한다. 최종범의 가슴에 수놓인 ‘삼성’은 거짓이었다. 그는 이른바 하도급 노동자였다. 삼성은 다를 거라는 환상은 어떤 면에서 착각이었으나, 어떤 면에선 현실이었다. 삼성은 다르지 않았고, 허나 확실히 달랐다.

2. 십이월의 첫 주, 쪽지가 날아왔다. 후배였다. 웬일로 겸손한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탁의 건이었다. 돌 사진을 찍어달라는 얘기였다. 난데없는 요청에 경험도 전무하므로 단박에 거절해야 하리라. 하지만 못했다. 최종범의 아기, 1년 전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했다던 존재, 최별의 돌잔치라는 거였다. 후배는 기특하고도 영악하게 우리집 늦둥이의 안부를 물었다. 고로 내가 적임자라는 얘기였다. 2013년 12월 13일과 15일에 나는 첫 돌을 맞은 두 강아지의 사진을 찍었다. 최별은 붓을, 노은은 연필을 쥐었다.

3. 두 물음이 사무친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무엇이 “새로운 삶”을 약속했던 아빠 최종범을 벼랑으로 민 것일까. 우리의 강아지들이 각자의 붓과 연필로 그리고 적어야 할 세상이 이토록 무겁고 무서운 것이라면, 축복이란 얼마나 공허한가. 안녕할 리 없다, 이대로라면. 안녕하지 못한 어른들이 건네는 ‘안녕!’은 마치 삼성의 ‘가족!’이 내뱉는 헛된 인사처럼 씁쓸하다. 실은 기만적이다.


사진의 털 #125
<씨네21> 2013.12

-----------

어느새 성탄 이브로군요. 저는 비록 예수를 믿고 따르지 아니하나, 세상의 가난하고 고단한 이들을 예수로 섬기며 낮은 곳으로 향해 온 참된 성직자들의 존재만큼은 믿습니다. 대추리에서, 용산에서, 강정에서, 밀양에서, 쌍용차 공장 앞에서 숱하게 그 분들을 보았습니다. 별이의 돌잔치를 '아빠인듯' 마련해 주신 이들도 그 분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야말로 정치를 올곧게 세우는 데 동참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새 교황님의 말씀은 얼마나 근사한가요.

세상의 모든 강아지들이 복에 겨운 성탄이기를!
예수님도 한 때는 귀여운 강아지였겠지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싫어증
TAG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싫어증
TAG